가끔 멈춰서서 아무데도 가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당장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나름대로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도시가 조금씩조금씩, 건물의 사이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알고 있는 장소로 변해간다.
그러다 보면 무미건조하고 남의 일처럼 보였던 건물의 벽과 문명의 잔재에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황갈색 하늘 아래, 끝자락이 그을린듯 타버린 구름을 들이마시듯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쓸쓸할 정도로 맑은 공기가 내 안을 오가는 감각에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오늘도 그녀와 둘이서 이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
둘로 나뉘어 작업하다보면 문득 마을 건물에서 드리워진 그림자가 눈에 들어올 때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귀를 기울여도 멀리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녀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무사히 그곳에 있는지, 그런 걱정이 언제부턴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 감정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알고 있는거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낯설고, 외부에서 왔지만 익숙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장의 목표인 큰구멍의 물웅덩이는 아직 멀었다.
문명과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살기 위한 시간을 그녀와 분담할 수 있다.
반반씩 나눈 고단함의 틈새를 메워가며, 뭐, 적당히 해나가려고 한다.
쉬지 않고 목적지에 나아간다면 또다시 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무르기를 선택하며 살아가던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찾아온 것은 숲으로 가려고 입구 근처에 서 있던 그런 날이었다.
바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무를 흔들며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는 이에 화답하듯 정체를 내뱉는다.
회색빛이 짙은 덩어리가 하늘을 가르는 듯 날개를 펴고 차례로 날아오른다.
허공에 커다란 선을 그리며 수많은 새들이 숲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드문일이네」
자신 이외의 생물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것도 새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다니다니. 새는 순식간에 먼 곳을 향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잡거나 쫓아간다던가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머리만 움직여 바라보았다.
그 새가 날아가는 저편에서 거꾸로 이쪽으로 찾아오는 변화가 있었다.
섬뜩하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새까만 물이 흘러들어와 섞이듯, 점점, 점점, 황갈색이 짙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라데이션은 아름다웠지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곧장 숲 입구에서 되돌아와 마을로 돌아간다.
달리면서 또 다른 발소리를 찾는다.
목구멍 깊숙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땅을 밟는 소리가 서로에게 전달되어 서로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계속 강하게 짓밟았다.
그리고 건물 자체가 그림자와 동화되듯 칠흑 같은 어둠이 다가올 무렵.
그녀 역시 도망치듯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충돌할 것 같은 기세로 서로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었다.
나의 왼손이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춤을 추듯 돌다가 두 발 모두 멈춰서서 하늘을 같이 올려다 보았다.
올려다보는 동안, 점점 넓어지듯 칠흑 같은 어둠이 하늘을 물들인다.
드디어 이 별의 끝인가 싶어 빈 손의 주먹을 불끈 쥔다.
반면 옆의 그녀는 눈과 입을 동그랗게 뜨고 「 아 」 라고 꽤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건 밤이야」
「밤?」
그녀의 말을 따라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 나를 키워준 사람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별의 환경이 망가지기 전에는 빛이 닿지 않는 시간이 온다고」
그 설명이 계기가 된 듯이 기억이 난다.
「...나도 누군가에게 들었던거 같아」
그 이야기를 한 녀석은 지금도 이 하늘 너머를 호기롭게 날고 있는 걸까.
「 의외로 무서운 건 아닐지도 몰라요 」
「하지만 이대로 계속 밤이면 어떡하지?」
「어떠려나아」
그녀는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목소리에 여유가 있었다.
나도 그녀와 연결된 손을 떠올리며 의식하니 어둠 속에 불빛이 떠오르듯 뺨의 온도가 높아졌다.
마음을 뒤섞는 듯한 웅성거림이 조금 가라앉는다.
「......야시로」
그 녀석은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우리가 만나서 세상이 조금 더 둥글어질지도 모른다고.
막혔던 무언가가 다시 연결될 거라고.
이 하늘도, 날아간 새들도 이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일까.
조금씩 움직이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도.
「 만약에, 또 빛이 찾아오면 」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나는 빛나는 꿈을 꾼다.
「같이 나아가자」
별것 아닌 권유인데 가슴이 벅차오른다.
밤에 겁에 질려 얼어 붙은 피가 녹아내리듯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자전거를 고쳐서 같이 타자. 그리고 조금 멀리 가서 보고. 그리고 돌아오는거야 」
둘이서. 여기에서
둘이서.
그녀는 씨익, 밤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얀 이를 드러냈다.
「 좋아요 아, 내가 뒤에 탈 테니 열심히 가봐요」
즐거워 보이는 쾌활한 미소에, 얕보지마 라고 말할려고 생각했는데, 「 맡겨줘 」 라는 기분 좋은 승락이 나왔다.
누가 대답을 했을까,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기뻐하고 있다.
벅차오를 정도로 톡톡 튀는 기쁨을 손에 쥐고 있다.
마치 예전에 반짝반짝 빛나는 녀석이 내려와서 여행이 시작된 것처럼.
나의 이야기는 언제든 하늘에서 날아오는 것 같다.
「저기 저거봐」
그녀가 가리키는 끝에는 길고 검은 구름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커다란 별.
그 별은 밤 속에서 점점 당황하고 움츠러들 것 같은 우리를 비추기 시작한다.
인도하듯 빛을 가져왔다.
「전부터 어렴풋이 하늘에 떠 있을 때 보았지만...... 이렇게 되니까 정말 선명하게 보이네요」
「저 별 이름, 뭐였더라......」
그녀는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을 찾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빛 너머에서 답을 찾는다.
뺨을 적시는 듯한 온도를 착각하게 만드는 새하얀 빛.
아아. 생각났다.
「저건......」
그녀에게 답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그 별을 올려다본다.
저건 야시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새하얀 별이다.
『달』이다.
그 별은 무언가를 되찾은 듯 빛의 원을 그리며 우리를 껴안아주듯 비추고 있었다.
아다치와 시마무라 99.9 「Sun Halo」-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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