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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와 시마무라/아다치와 시마무라 99.9

아다치와 시마무라 99.9 「Chito」- ①

 

그 이상한 생물과 만나고 나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려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날짜를 세지 않고 있었다.

이 녀석이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서, 일상에서 변화를 느끼기 어려워졌고, 그저 시간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무슨 일 있나요?」

부드러운 뺨을 좌우로 잡아당긴 채로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입을 통해서 나오는 듯한 억양이 없었다. 쭈욱 하고 끝없이 볼살이 늘어난다.

「아뇨 아뇨. 아무 일도 없답니다.」

「그~런가요」

볼살을 늘어뜨린 채로 그대로 납득해버렸다. 그리고서는 총총걸음으로 나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본인도 앉은 다음에야 깨달은 듯 늘어난 볼살을 문지르며 원상태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못 본 거로 해야겠다.

무릎을 세우고 팔꿈치를 대면서 느긋하게 풍경을 바라본다.

어둠을 손톱자국 모양으로 갈라놓은 불빛에 잘린 풍경만이 비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물을 식물이 지금도 자라나며 침식해가고 있다.

이 주변도 꽤 오래된 듯하다.

그 틈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내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호흡은 차분하고 가늘었다.

거울 같은 것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기 쉽고 피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걷다보니 해지는 것도 못 봤는데 완전 밤이 되어버렸다. 밤에는 졸리기 마련이다.

턱을 받치고 있던 것이 빠지고, 그대로 등이 굽어버렸다. 몸보다 의식이 빠르게 가라앉고 진흙에 파묻히듯이 깊이 빠져들어 간다. 생물은 어째서 잠에 드는 걸까? 잠자는 시간 동안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면 나는... 이라며 깜깜한 밤의 끝을 조용히 생각한다.

계속 걸어갔다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

「그나저나 저녁 식사는 아직이려나요?」 뺨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평소처럼 밥을 달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름을 부르며 날 찾는 바람에 적당히 기분 좋던 잠기운이 날아가 버렸다.

 

 

 

「치토씨」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재촉당해서 좌우를 살피고는 보따리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을 하나 손에 잡았다.

한나절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얻은 성과를 손에 쥐니 어깨 쪽에 무게감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이 주변에서 가져온 뭔지 잘 모를 과일이야」

「냠냠」

물론 농담이다. 빨간 열매가 먹어도 되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서 주었다.

이 녀석은 그것을 껍질은커녕, 쓴맛밖에 안 나는 심지까지 씹어 삼켰다.

식재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따라 해보려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그리고 가져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어서 “안전한 건가?” 하고 손을 대 본 적도 있었는데

먹고 나서 몇 시간 후에 환각과 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온 세상에 무지갯빛이 펼쳐지고 밤이 하얗게 보일 정도의 환상을 본 이후로 이 녀석은 독이 있는지 판단해줄 역할에는 전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먹은 열매는 수직으로 갈라져 평평했다.

치아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기분 좋은듯한 소리를 내며 심까지 배속에 집어넣고 나고서야 차분해지더니 피워놓은 불에 맞춰 좌우로 흔들거린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불가사의한 입자가 나와 공중을 떠다닌다.

잡아보려 했지만, 손가락에 올라와 있는 그것은 인식해버리면 공기 중에 녹아버리듯 사라져 버린다.

지금도 불의 반대편에서 온기와 함께 빛이 전해진다.

「뭔가 또 이야기해줘」

해가 저물 때까지 움직였기 때문에, 오늘 밤은 움직일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이 녀석의 이야기라도 듣는 게 가장 진정된다.

「저번에 해준 이야기 뒷이야기는 없어?」

「그거 말인가요?」

그 녀석의 푸른색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본다. 듣다 보면 잠들겠지. 그 녀석은 얇은 무릎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 이야기는 말이죠.....」

만약 그것들이 실화라면 그것은 3700년도 더 된 작은 이야기이다.

 

 

 

「흔히 있을 법한 거긴 한데,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단 말이지」

「에, 음... 무슨 이야기야?」

「근처에 썬마트라는 가게가 있는데 어렸을 때, 바다에 사는 해마인 줄 알았어. 봉투에 분명히 태양 그림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랬구나」

「응」

터벅터벅 걷는다. 오늘은 뭘 사야 했더라~ 라면서 신호등을 바라보며 반복한다.

“딸기잼이 필요했던 것 같아” 라며 자기 마음을 입 밖으로 내고 나니 시선이 느껴졌다.

옆을 걷고 있는 아다치가 이야기의 다음 부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일단 말해 두었다.

「그게 전부야~」

끝~이라고 이야기를 그만두니 아다치가 「그렇구나」라고 미묘한 태도를 보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슈퍼에 가니까 슈퍼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음...그런 점이 있지 시마무라는」

「에? 무슨 말이야?」

「그런 부분 말하는 거야」

언제 어디서 그랬다는 걸까.

맨션에서 슈퍼까지의 거리는 때로는 적당한 산책로가 되지만, 때로는 힘이 빠지는 나른한 길이 된다.

오늘은 쉬는 날이기도 해서 좋은 길이다.

아다치와 나란히 쾌청한 날씨를 느긋하게 걸어 다닌다.

5월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온도는 벌써 초여름 정도였다.

위를 바라보며 걸으면 땀이 줄줄 흐를 것 같았다.

슈퍼에 들어가서 시원한 공기에 닿자 안심이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 놓인 바구니를 집으려 하자 아다치가 먼저 빨간색의 그것을 손에 잡았다.

「어머~ 우리 아다치쨩은 눈치가 빠르구나~」 라며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칭찬하자 아다치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시마무라네 어머니 같이 보였어.」

「으엑-」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싫은 건 아니지만 그대로 인정하자니 저항감이 들었다.

「오호호호, 아다치씨도 정말~」 이라고 말하며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아다치는 미안할 정도로 웃었지만, 솔직히 살짝 흔들렸다.

「이런 사람은 직장에 없는 거야?」

「오호호호하면서 웃는 사람은 없...다기보다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긴 해?」

「글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아가씨인 히노조차도 그런 말투와는 거리가 멀다.

아다치와 나는 근무처가 다르다.

함께였다면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 아다치의 의견이다.

아다치가 학생이었을 때는 뭔가를 해도 같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 해야 하나 점잖아졌다고 해야 하나... 자식을 독립시킨 어미새의 기분이 들었다. 라는 건 농담이라고 치더라도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듯했다.

세월이 흘러가며, 나의 마음은 확실하게 전해진 듯하다.

그것은 아다치 뿐만 아니라, 나도 마음을 잘 전달하는 방법을 알게 된 성과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바구니를 아다치에게 맡기고 이쪽저쪽 식품 진열대 앞을 돌았다.

흥흥흥~하며 채소나 과일을 검지가 가리킨다.

밥 먹기 전이기도 하지만 조리하지도 않은 식재료의 맛을 상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컬러풀한 음표 같은 것이 떠오른다.

「시마무라는 슈퍼에 오면 즐거워 보여」

「그래?」

그렇게 듣고 나서, 슈퍼에 들어오고부터 지금까지를 되짚어봤다. ....그러네, 기분이 좋은가보다.

「그거 있잖아. 과일이 잔뜩 있는 코너 같은데 둘러보면 재밌지 않아?」

「음... 그러네...」

재미있지 않은가보다. 뭐 나는 나, 아다치는 아다치니까.

되돌아가서, 잔뜩 쌓여있는 바나나와 질서정연하게 상자에 들어가 있는 체리를 바라본다.

다양한 색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들뜬다.

진열된 파인애플 앞을 지나가면, 가슴에 스며드는 상쾌한 향기가 나는 것들도 느껴지지만, 그런 건 나뿐인 것 같다.

옆에서 걸으며 아다치에게 보이는 풍경은 완전 다른가 보다.

먹는 것에 관심이 적은 아다치에게는 이 음식들에 둘러싸인 길이 어떻게 보일까?

물어보더라도 표현이 서투른 아다치는 분명 「에... 채소 같은 게 가득 진열되어 있네...」 라고 말하겠지.

정말 완벽하게 아다치 그 자체였다.

아다치가 지긋이 진열대를 노려다 보며 걸어간다. 뭔가를 찾은 것처럼.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응.. 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다치는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시마무라가 즐기고 있는데 나는 즐기지 못한다는 게 뭐랄까...쓸쓸하니까」

「.....................」

아다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스타일은 고등학생 때보다 살짝 기른 채로 유지하고 있었다.

「으...왜?」

「그냥 뭐랄까 귀여운 말을 했으니까?」

머리를 계속 쓰다듬자, 아다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기본적으로 애 취급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다치쨩이었다.

여동생에게 했을 때도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곤 했어서 그런지 좀 그리운 느낌이 든다.

이대로 계속하자 아다치가 내 손을 잡아서, 뭘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던 그때.

「ㅇ...와앙」

「앗!」

손끝을 물렸다. 가운뎃손가락이 아다치의 입안에 들어갔다. 아다치는 깨문 채로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굳어있었다.

아다치의 앞니가 조금씩 내 피부에 스며들었다.

기다려 본다. 아다치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딱히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고 있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인지, 아다치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되어갔다.

뒤쪽의 매대에 놓여있는 무와 비교해보면 그 과정이 아주 잘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었다.

눈앞이 빙빙 돌기 시작해서 곤란한 듯해 보이니, 손가락을 빼주려고 하니 재빠르게 손목을 잡혔다.

아다치의 혼란 상태는 더 심해졌다. 나도 등에 땀이 맺힐 것만 같았다.

어쩌자는 걸까.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장보기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태양이 구름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구름이 움직이자 점점 거리에 빛이 사라져간다.

문을 닫는 것처럼 얇아지던 빛이 사라졌다.

그러한 풍경을 멀뚱멀뚱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아다치가 나의 비어있는 손을 잡았다.

「어라?」

손을 잡는 것도 꽤 능숙해졌다. 이전에는 어디다 들이박을 것 같은 기세로 그러더니, 이제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듯한 느낌으로 해낸다. 참고로 말하자면 아직 이륙은 못 한다.

「짐이 많아 보여서 힘들어 보이니까 안 하려고 했는데」

아다치가 꽤나 고개를 숙인 채로 설명한다.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 생각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다치답다.

「그러네」 라고 장바구니를 살짝 흔들었다.

맞잡은 손을 크게 흔들었더니 아다치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같이 흔들어주었다.

이렇게 평소에 하지 않던 것들도 같이 해주려는 부분은 여전히 서투르다.

아다치에게 물렸던 손가락에 이빨의 느낌이 남아있는 걸 느끼다가 눈이 마주치고 미소지었다.

아다치의 손끝이 살짝 뾰로통해지며 열이 느껴진다.

「덥지 않아?」

「더워..」

그렇게 대답하는 아다치가 귀까지 빨개지는 것을 바라보며 웃었다.

 

 

 

며칠 후, 회사에서 돌아와 연락받은 대로 아다치가 늦는 것을 알고있다.

「덜컹 덜컹」

혹시나하는 생각에 문고리를 확인해 봤지만 정답이었다. 열쇠로 열고 발로 문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으니 그대로 신발도 벗지 않고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아...그래도 안 돼」

일단 누우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고 정리한다.

몸을 굽힌 순간, 남아있던 에너지가 확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드러누우면 죽겠지만, 앉으면 되겠지라며 타협하여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발도 뻗고, 뒤에 손을 짚었다.

「하아...」

연료가 다 떨어져서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몇 번이나 멈췄다.

「피곤해..」

다른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솔직하게 내뱉었다.

나이를 먹어감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이 세상, 그래도 요즘은 잘 해내고 있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집안일이라던가 장보기 귀찮아.

엄마는 적당히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걸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의 이 시간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닌, 「내일도 일이냐」 라며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사실은 피곤해에에에 라며 바닥에 새우처럼 팔딱거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애초에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었다면, 옷부터 갈아입고 저녁이나 만들라이거야.

「해야 하긴 하는데...」

바닥을 밀며 일어난다. 생각 외로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젊다고 확신했다.

아다치와 이 맨션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지 2년인가 3년.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고, 서둘러 갈 것 없이, 천천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중에 질릴 일도 없어 보이고, 너무 빠르게 결과를 찾아낼 일도 없이, 딱 적당한 상태이다.

일어선 다음,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불빛이 없는 지금 상태와 방 안쪽에서 찾아오는 조용함이 사실 싫지 않다.

먼 쪽의 벽을 바라보며 숨 쉬는 것을 의식하자, 쌓여있던 피로가 조금은 빠져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빠져나오는 때의 온도 차에 몸이 살짝 떨려온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언젠가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려나.

계속 잃기만 한다면 나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거라고 생각한다.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고 나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도대체 이 셔츠는 몇 년이나 입었을까? 소매나 목 주변이 헐렁거리고 겨드랑이 쪽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구멍이 나 있다. 이런 것이 좋다.

출근 전에 닫아둔 커튼을 열면, 석양이 비치는 마을을 볼 수 있다. 길거리가 하늘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창틀에 손을 대고 잠시 동안 경치를 바라본다.

하늘 아래를 걸어 다닐 때는 별로 신경 써본 적이 없었고, 내가 얼마나 아래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창문을 열었더니 방충망 너머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아쉽지만 새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까마귀는 아니었다.

여동생은 동물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알지도 모르겠다.

집에 잔뜩 있던 도감이 문득 생각났다. 내 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 그럼」

거실에서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마시고, 뭘 만들까~라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식사 당번은 하루씩 번갈아 가며 하지만 한쪽이 바쁜 시기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번 주는 내가 계속하고 있다.

아다치의 일이 바쁘다는 것은 뭐 그러려니 한다.

「돈은 중대 사항이지~」라며

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들여다본다. 쉬는 날에 사놓았던 식재료를 바라보며 뭘 만들까 생각한다.

아다치는 식사라는 것에 대체적으로 흥미가 없기 때문에, 식단을 짜는데 꽤나 힘들었다.

기왕 만드는 김에 즐겁게 먹어주면 좋겠지만 아다치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일 뿐이고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물어보면 어떤 요리든 맛있다고 대답한다... 내 파트너는 이런 사람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뭐 먹고 싶은 것을 묻는 건 물어봐도 소용없는 짓이다.

아무거나 상관없다고만 말하니까. 물어보면 일단 생각은 하지만 결과는 같기 때문에, 이런 대화는 애초부터 생략하는 편이 효율이 좋다.

아다치엄마의 기분이 지금에서야 살짝 공감된다.

그럼 그런 아다치는 어떤 것에 흥미가 있냐 하면...

「...부끄럽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대답이 있다.

「우동은 어떠실는지요?」

「으악」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녀석 때문에 놀란다.

하-이 라고 하며, 그 녀석은 기운 넘치게 짧은 팔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소가 그려진 잠옷에 후드에는 부드러운 뿔이 달려있었다.

뿔이 달린 소는 실제로 본 적이 없네 라는 생각을 했다.

야시로였다. 우리 집에 얹혀사는 의문의 생물은 신출귀몰하게 저녁밥을 노리고 나타난다.

「있었구나?」

「실례합니다~」

「문 잠가두었을 텐데」

「하하하하하」

가볍게 웃더니 자리를 피한다. 바닥에서 솟아났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고민하는 시마무라씨에게 조언을 합니다.」

「거 참 고맙네」

「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거나 괜찮은데 말이죠」

이 녀석이 말하는 아무거나 괜찮다는 의미는 아다치가 말하는 것과는 살짝 다르다.

딱딱거리며 옅은 하늘색의 이가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나를 올려다보는 키가 고등학생 때보다 더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왜 우동인건데?」

「낮에 TV에서 봤어요」

「단순하구먼」

우리 엄마한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걸까 뿔을 잡고 만족할 만큼 흔드니 「아으아으아으」 거리자 놓아주었다.

냉장고에 있던 우동팩을 세어보니, 아 역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우동을 먹으려면 네 몫이 부족해」

「그건 큰 문제군요」

야시로가 까치발을 들며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다. 위에서 아래까지 샅샅이 확인하더니 맨 위에 있던 초콜릿을 발견하고는 껑충 뛰어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을 거침없이 내쳤다. 야시로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왔다.

「실력이 늘었군요. 시마무라씨」

「후후후」

의기양양해졌다. 그보다 지금 야시로가 내 키보다 높이 뛰어오른 것에 대해 신경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못 본 거로 하기로 했다. 야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누르며 함께 냉장고 앞에서 고민한다.

「너 점심에는 뭐 먹었어?」

「복숭아를 먹었어요」

그다지 참고할 것이 되지 못했다. 어제 해둔 밥을 넣은 덮밥을 꺼내며 서로 바라보더니,

「볶음밥이라도 할까」

우리 엄마도 뭘 할지 고민될 때는 볶음밥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재료를 많이 넣으면 밥이 적은 것도 커버할 수 있겠지.

「우와~」라고 야시로가 그저 좋아한다. 아마 뭘 만들었어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다음엔 미소시루... 양은 충분히 있고, 그다음엔 어디 보자...」

「젓가락 세팅해둘게요」

선반에서 꺼낸 젓가락을 잡고 탓 탓 탓하며 달려간다. 성급하구먼 이라고 느끼면서도 의외였다.

「이젠 도와주는 거야? 기특하네」

「작은 시마무라씨가 자주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말이죠」

킄킄킄하며 득의양양하게 젓가락을 놓았다. 보고 있자니 힘이 빠지고 웃음이 나왔다.

「여동생은 어때?」

「어떻냐뇨?」

「그게 말이지...」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한순간 고민했다.

「과자를 많이 주니?」

「잔뜩 준답니다」

그거참 다행이네 라며 다시 웃었다. 그리고서 이 녀석한테 빨리는 여동생의 용돈이 살짝 걱정됐다.

「아, 숟가락도 갖다 줘」

「네네~」

여기저기 다니며 야시로가 총총걸음으로 뛰어다닌다. 식탁 위에 놓아두니 금방 돌아왔다.

그렇게 다가오는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그리고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뭐」

「작은 시마무라씨는 뭔가를 도와주면 칭찬을 해줬답니다」

「헤에」

「두근두근」

굳이 말을 꺼내는 단순무식한 녀석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호호」

만족했나 보다.

「...음...」

왠지 내가 뻘쭘해져서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오드득 오드득」

「깨물어서 먹지마」

금방 없어지게 될 텐데.

할 일이 사라진 야시로가 부엌을 어슬렁거린다.

「방해되잖아」

「그런가요?」

「TV라도 보던가」

등을 떠밀며 부엌에서 쫓아냈다. 야시로는 양손을 치켜들고 와~하며 소파 쪽으로 갔다.

그대로 뛰어들어 뒹굴뒹굴하며 TV를 켰다. 채널을 돌려가더니 음식이 나오는 영상을 본 순간 멈췄다.

자기가 항상 하던 대로라면 지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도 원하는 정보를 찾아냈을 테지만...

「아다치씨는 늦나요?」

「살짝 늦는대. 아다치는 성실하니까」

나도 뭐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다치는 고등학생 때부터 알바같은 걸 했었으니까,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다치쪽이 급여는 더 많이 받고 있고, 집안일까지 나눠서 하고 있자니 뭔가 부려먹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살기로 정하고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 살 지라던가, 맞벌이를 할 지라던가. 냉장고의 크기를 정하는 것도 고민했고, 테이블 모양, 소파 색마저도 아다치와 상담했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다치는 시마무라가 좋아하는 거로라고밖에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다치는 자기가 가는 길이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선택해버려도 전혀 상관없나보다.

그게 뭐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보고 싶어 하던 방송이 금방 끝나버리고, 야시로는 그대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여동생도 말했었지만, 말 그대로 사람의 형태를 한 고양이다. 틈만 나면 잔다. 뭐 나도 옛날에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맘 편하게 잘 수는 없다. 쉬는 날을 빼면.

「얼마 전에, 아다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더니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 자게 두더라. 어이가 없었어」

「불성실하시네요. 시마무라씨」

「그렇게 볼따구를 찌그러트린 네가 할 말이냐」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잠자면서 대화하지 마.

양파껍질을 까고 다지고 볶는다. 아다치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손질만 해두었다.

우리 집에서 하는 볶음밥에는 항상 다진 양파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넣었다.

혈통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있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어떤 사소한 인간관계에도 있다.

「좋은 냄새네요」

「그러게」

「쿨쿨」

「잘 거면 자고 말할 거면 말하고 하나만 해」

뇌가 절반 정도는 절전모드로 돌려놓고 나머지만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 새도 있다고 들었다.

새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생물이 한다고 신기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뒷정리를 마치고, 뒹굴거리며 자고 있는 야시로에게 담요를 덮어준 다음 소파 끝자락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밖에는 노을빛이 남아있었다. 가만히 입을 벌린 채 기울어진 거리의 풍경을 즐긴다.

살짝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별 볼 일 없던 동네가 확 달라 보인다.

시각이라는 건... 뭐랄까... 즐길 수 있는 것인가보다.

「카레 같은 색이네요」

눈을 감은 채로 야시로가 말한다. 어디서 뭘 보고 있는 건지.

「카레라...」

저 녀석은 식탐이 대단한 만큼 딱 알맞은 비유였다. 하지만 카레 같은 색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옅은 것 같았다.

이런 건 말이지.

「꿀 같은 색이라고 해야지」

어째서 꿀이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물엿 같은 색이어서 그랬을까?

「흠흠흠」

「그래그래」

「꿀도 맛있어 보이네요」

「그런 생각밖에 안 드는 거냐...」

에잇! 하고 작은 발바닥을 찔렀다. 말랑말랑했다.

「새근쿨쿨」

잠자는 소리가 조잡해졌다. 엄청 성의 없는 생물이었다.

아니면 적당히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가 저물어가면서 나도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럴 때 옛날의 나는 무엇을 했는지를 되돌아보고 나도 자야지라며 소파에 다리를 올렸다. 그러다 이래저래 바쁘게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을 자면서 기다리는 듯한 그림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저항감이 살짝 들었다.

역시 돌아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리는 편이 좋겠지? 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늘어진 모습은 안 돼. 앉아있으면 확실하게 잠들어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체조를 시작했다.

라디오 체조를 떠올리며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볍게 점프를 해봤다. 계속하다 보니 어느샌가 야시로가 일어나서 옆에서 같이 체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눈은 감겨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어? 이거 알아?」

「작은 시마무라씨와 자주 했었답니다」

「아...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름방학 때 라디오 체조를 하던 곳에서부터 여동생이 이 녀석을 데리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데려올 필요도 없이 대부분 집에 있다.

흔들흔들 춤을 추듯 움직이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물이 마음에 스며들어 기분 좋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