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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와 시마무라/새로 쓴 SS

아다치와 시마무라 9 「게이머즈 특전」

 

 

무한한 거품처럼

 

 


「오오~ 히노가 우리 집에 나보다 먼저 와 있었네 」
「어~서와아~」


나가후지네 집 안쪽에서 뒹굴거리며 만화를 읽고 있는데, 뒤집힌 꼴을 한 나가후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하교할 때 그대로의 교복 차림이라, 어라? 싶었다.
분명 비슷한 시간에 학교를 나왔을 텐데.


「어디 딴 데라도 들렀다 왔냐?」
「후후, 비밀 특훈이지」
「뭔데 그게」


물어보고 나서야 녀석이 한 손에 부메랑을 꽉 쥐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이 녀석은 학교에 저런 걸 들고 갔던 건가, 
늘 한결같이 이상한 녀석이다.


「아! 맞다」


신발보다 안경을 먼저 벗어 던지며 나가후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어제 내가 꿈속에서 깨우친 걸 듣고 싶어?」
「......평소보다 30퍼센트는 더 뭔 소린지 모르겠네. 」


만화책을 덮고 벌러덩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나가후지는 이미 벗어서 없어진 안경을 잊은 채 에어 안경을 척척 치켜올린다.


「난 과거에서 왔단 말씀」
「그러냐. 차 조심해서 가라」


「일단 들어봐」 하고 나가후지가 신발을 벗고는 그대로 마루로 올라왔다.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나가후지 아버지가 잔소리를 했을 텐데, 이 녀석의 귓구멍에 그런 말이 들어갔을 리가 없다.
그러고는 네발로 기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자고 있을 때 이런 얘기를 들었거든」
「......뭐?, 누구한테? 」


글쎄, 하며 나가후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일일이 따지고 들면 이야기가 도통 진행될 것 같지 않았다.

「됐고, 일단 애기 해봐 」
「그렇게 듣고 싶으신가  오~냐 오냐」


가방을 내팽개친 나가후지가 부메랑 날개 각도를 조절하며 입을 뗀다.


「태양 말이야~, 한 8분 전 빛이 우리한테 닿는 거라네 」
「어? 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


티비에서 봤던가, 학교 수업에서 들었던가.
후후후, 하고 나가후지가 우쭐대며 이어 갔다.


「달빛은 1초 조금 전이라더라」
「흐~음」
「응응」
「...... 그래서?」


잡지식 자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가? 나가후지의 화법이니 여기서 끝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거리가 있는 것들은 전부 과거에서 찾아온다는 거야.

나도,히노도, 0이 산더미처럼 붙을 만큼 짧다 해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0이 아니란 거지~ 」
「호오」


뭔가 심오한 내용처럼 들린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비록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극히 미세한 차이라 해도, '지금'을 공유하는 건 없다.
그야말로, 나 자신조차도 마찬가지다.
그게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0이 잔뜩 붙은 나가후지 씨는 어때?」
「가슴은 큰 게 건방지네.」


에잇, 하고 만진다.
에잇, 하고 얻어맞는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얘긴데」
「흐~음」
「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가후지가 꾸물꾸물 다가오더니, 포식이라도 하려는 듯 두 팔을 쫙 벌려 나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나가후지의 갑작스러운 포옹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익숙해지는 건 또 아니었다.


「뭐야」
「난 히노의 ‘지금’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거네~」


내 등을 안고 있는 나가후지는 무척이나 기쁜 듯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뭔가 대답할 거리를 찾다가, 긴 말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짧고, 안이하게 대꾸한다.


「...... 그럴지도」


나가후지에게서 전해지는 소리와 냄새가, 마치 내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착각이 든다.
나와 나가후지의 경계가 허물어져, 손끝까지 포개지는 기분이었다.


「0이 몇 개나 늘었으려나?」
「잔뜩 늘었으면 됐지, 세기도 귀찮은데」


넌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테니까.


「그것도 그러네」 어깨 위에서 나가후지의 머리가 움직인다. 
보지 않아도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 굳이 묻지 않아도,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도, 이 녀석이 웃으리라는 걸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시간들이, 물리적인 신체 이상으로 나가후지와의 거리를 좁힌다.
이 순간의 나가후지는 어쩌면, 내게 있어 ‘0’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모르는 사람들~」
「결국 누구냐고, 그 녀석들......」


물어봐야 소용없는 걸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나가후지는 언제나 달보다 내게 가깝고, 그 사실이 뭐랄까, 아아 좋구나 싶었다.
나는 별거 아닌 당연함에 만족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