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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와 시마무라/특전소설

[아다치와시마무라] BD특전소설 2권 「死間」- ③

그럼 지금 걷고 있는 의미가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도 꾸역꾸역 다리를 움직이다 보니

「오 시마쨩이잖아」

약간 낮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라는 실례되는 반응을 하며 아래를 내려본다.

히노였다. 올해 같이 스무 살이 될 히노의 키는 고등학교 시절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붉은색의 일본식 옷을 입고 작은 손을 흔들고 있다.

길거리에서 볼 때는 일본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건 히노의 역할이 늘어서 일수도 있고, 그냥 취미일 수도 있다.

일단 말을 걸어왔으니 저쪽으로 향했다.

「한가해보이네」

「쉬는날이니까 한가한게 좋겠지」

할 일이 있으면 못 쉬니까.

「그것도 그러네」 라며 히노가 긴 소매를 걷듯이 팔짱을 낀다. 일본옷에 맞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당고머리를 하고 있었다.

히노가 하늘을 보기도 하고,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고, 내 어깨를 에잇 에잇하며 두드려주기도 한다.

나 못지 않게 한가한 것 같았다.

「이야 산책하려고 나왔는데 시마마쨩을 발견했지 뭐야」

마가 많아졌다.

「아 히노네 집 이 근처였지」

「집이 보일 때까지는 2분. 현관에 도착하기까지는 10분」

「좋은 운동이 되는 것 같아」

금수저에게만 통하는 개그를 주고받으며 히노가 발길을 돌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차라도 하고 갈래?」

「히노네 집에서?」

「거기 말고 공짜로 차를 마실수 있는 곳을 모르니까... 아, 나가후지네 집도 있구나」

「그럼 잠깐 실례 좀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히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그렇게 없었기에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히노의 집은 이전에 한번 갔다온 뒤로가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앞쪽까지만 갔었고 안쪽을 걸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번 보면 집 주변의 경치를 잊는 일은 없겠지.

대나무가 가득하고, 대나무 사이를 걷는다.

부드러운 초록 빛이 내리쬐면 몸에 감겨있는 더러움이 벗겨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니 우리 엄마도 그곳을 걸어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멋대로 어슬렁거렸다가 붙잡힐 뻔했다」고 하더라.

엄마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지만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빠는 그런 분방함을 방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가후지 있어?」

「어이어이 네 이놈 여긴 우리 집이라구」

그래서 물어본건데.

히노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예전 기억대로 상쾌했다. 관광지로 잘못 찾아온 것처럼 공기가 변했다.

고요하고 기분 좋은 차가움이 엷게 쌓인 눈처럼 굳어있는 것 같았다.

대나무 숲 사이를 뚫고 어디선가 빠져나온 향기를 머금은 바람을 가득 들이마셨다.

뒤쪽에서 걷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히노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이는 것처럼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10분은 좀 오버한 것 같고, 현관까지 5분은 걸렸다고 생각한다.

풍광명미라는 사자성어를 들어 표현하기 딱 적절한 안쪽의 정원 앞에는 자동차가 여러 대 서있었다.

히노는 그쪽을 힐끗 보면서도 딱히 아무 말도 없이 현관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다녀왔어」

「어머 빨리 오셨네요?」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부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신발장을 닦으며 돌아보았다.

내가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실례했습니다.」 라고 하며 빠르게 물러갔다.

「괜찮아요. 제 친구니까」

계속하세요라며 히노가 어깨를 눌렀다. 가정부분은 쓴웃음을 지으며 굽신거렸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어 히노네 집 복도로 올라왔다. 신발을 정리하려고 굽히기도 전에 가정부분이 이미 정리해두었다. 다시 한번 머리를 숙였다.

「가정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

「너 예전에 왔을 때도 같은 소리 했었다」

「그랬었나?」

복도를 걸으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니 히노가 「나가후지냐」 라며 웃었다.

「어이쿠」

지나가던 방에서 작은 머리가 나타나 무심코 멈춰섰다.

아직 머리카락도 덜자란 아기가 이쪽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히노...여동생?」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딸이냐는 소리보다는 낫나 라며 히노가 중얼거리더니.

「한 살 많은 오빠네 애야. 다른 오빠들이랑은 다르게 결혼했는데도 집을 안 나간단 말이지」

히노가 수구려서 팔을 뻗으니 아기가 엉금엉금 다가온다.

오빠네 아이라면 히노가 숙모가 되는건가? 그리고 이 아이는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아기는 딱 보고 알아채기가 힘들다. 아이는 히노에게 안겨 진정된 건지, 얌전하다.

히노의 어깨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길래 「안녕?」 하고 손을 올려 인사했다.

반응이 없어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시마무라는 언니력은 높은데 엄마력은 없나보네」

「어느쪽이든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나는 엄마력도 없는건가 라며 아다치와 주고받은 말을 떠올려보았다.

아다치는 엄마력을 발휘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데 언니력에는 약하다. 이걸 조절하는게 꽤나 어렵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방에서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 아키라쨩」

「예이 예이」

히노가 아이를 여성에게 넘겨 주려하자 아기는 콧구멍이 살짝 넓어지며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히노가 당황한 듯 다시 껴안으니 아이는 조금 복잡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냈다.

「인기만점이네」

「어째선지 날 좋아하더라고」

곤란한 듯 웃으면서도 히노도 싫지는 않아 보였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나서 히노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히노의 방에 들어오는 건 아마 처음이다.

나랑 여동생이 쓰는 방보다 훨씬 넓다. 히노 혼자서 쓸 수 있는건가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남색의 방석이 날아왔다.

세로로 빙빙돌며 날아오는 그것을 어떻게든 쳐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차 가져올게」

「응」

「만화책 봐도 돼」

「그럴게」

히노가 복도로 나가고 있다. 안쪽문 반대쪽에도 문이 있어서 열어보니 넓은 정원과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오우야」 라고 하며 하얀 빛을 내는 자갈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여관같은 건물이 개인주택이라니 과연 납득이 간다.

확실히 여기를 어슬렁거렸다가는 체포될 것 같았다.

책장을 들여다 보았다. 책장은 5단으로 되어있고, 아래 2단에 만화책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가운데 단에는 소설이 있었고, 그 윗단에는 큼지막한 책들이 즐비 해있었다. 도감이라기엔 좀 다른 것 같았다.

뒷표지를 보니 뭔가 히노네 집안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어느 것이든 상태가 안 좋은걸로 봐서 분명 여러 번 읽혔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윗단에는 교과서들이 어지럽게 꽂혀있었다. 학창시절에 썼던 교재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음악교과서라... 내가 더 그리워지려고 한다.

수그려서 만화책을 손가락으로 고른다.

「나팔꽃과... 이걸로 할까」

가나다순으로 정렬해 놓은 것 같다. 작가 별로 정리해놓지 않은 것은 드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만화를 집어 들어 방 가운데에 있는 방석에 두었다. 이럴 때 방구석이 아니면 진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건 누구였더라. 만화로 눈을 돌리면서도 기억은 해답을 요구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뭔가를 찾아내기도 전에 히노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특이하게 진열해놨네」

책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그거 나가후지가 얼마 전에 저렇게 해놨어. 심심하다면서」

「그렇구만」

쟁반을 사이에 두고 히노가 반대편에 앉았다. 찻잔을 하나 이쪽으로 건네주었다.

「간식은 여기있어」

작은 캔이 들어있는 상자를 흔든다. 겉만 보고 판단했을 때는 별사탕인 것 같다.

「어느 쪽이든 비싸 보이네」

특히 이 차는 연기와 함께 올라오는 향에서부터 심이 있다. 보리차 정도여도 충분한데.

「이거 말고는 술 밖에 없었어」

「아, 마실 수 있어. 사실 나 오늘 생일이야」

나이만 봤을 때는 세이프지만 마셔본 적이 없다.

「에 진짜? 그럼 특별히 2개 줘버릴까」

흑설탕같은 색깔의 별사탕이 2개가 되었다. 내 생일 축하가 작다. 축하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잡았더니 「농담이야」 라며 히노가 통째로 건네주었다.

「먹고 싶은만큼 먹어」

「아이고 고맙습니다」

우선 한 입 먹어보고는 조용히 놀란다.

「이거 맛있다」

보통 먹는 과자들과는 질감부터가 달랐다. 뒷맛이 산뜻한 부분만으로도 아 이거 비싼거겠구나 라고 알 수 있었다. 야시로가 이런 맛을 알게 되어버린다면 큰일 나겠지.

「꽤 오래전에 나가후지도 같은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나가후지랑 같다라...」

음... 하며 장난으로 끙끙대니 히노는 만족한 듯 하얀 이를 보여주었다.

그러고 차를 마시며 잠시 조용한 정원의 경치를 즐긴다.

뭔가 이야기라도 나눌까하고 물어볼까도 했지만 촉촉하게 맴도는 공기에 젖어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은 만족스러웠다.

히노도 수면을 바라보듯 천천히 그리고 공손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몸짓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었고, 히노라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자라왔는지가 보였다. 고등학생때도 그랬다.

사양 않고 별사탕을 주섬주섬 집어먹으며 차로 단맛을 흘려넘기는 쾌감에 취한다.

머지않아 찻잔을 정리한 히노가 일어나며 물었다.

「시마씨야 장기랑 바둑중에 어느 걸 잘하는감?」

「바둑은 못하고 장기는 일단 알기만 해」

시골집에서 할아버지의 상대가 되어준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가차 없이 나를 발라버리고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고는 언젠가 이겨보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내 옆에는.

「.........................................」

아직도 이기지 못한 채로 20살이 되어버렸다.

「그래 장기로 하자」

히노가 방구석의 장기판을 가져왔다. 이것도 연식이 되어 보이는 잘 만들어진 장기판이 나왔다.

교양이 없어서 정확한 판단은 못 하지만 비싸 보인다.

스윽하며 판 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매끄러운 감촉도 그렇지만 히노네 집에 있는 것은 어찌 됐든 감촉이 좋다.

격이 높다고 해야하나?

「사실은 오셀로를 제일 잘하는데 말이지」

「그럼 오셀로로 할까?」

「HUN 싸움이란 어느 정도 레벨이 맞아야 재밌는 거 아니겠어?」

「뭐래」

「지금 거는 나가후지 따라해본거야」

여기 없는 나가후지를 강조하며 히노가 장기말을 놓기 시작한다.

확실히 나가후지같기는 했지만. 나는 아다치 흉내를 낼 수 없을까? 그렇게 열심히는 못 하니까 무리일 것 같다.

장기말을 놓는 소리가 살짝 기분 좋다. 할아버지한테 손톱깎이 소리 같다고 했더니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들어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히노에게 물어보자니 살짝 망설여진다.

「히노는 요즘 어때?」

놓여진 말들을 차례로 보며 근황을 물어봤다. 히노도 말을 차례로 집으며 대답한다.

「나? 나는 뭐 딱히 한 거 없지」

말을 앞으로 전진시키고 앞으로 구부리며 턱을 괴었다.

「학교 졸업하고 매일 아무것도 안했어. 낚시를 한다거나, 산책을 나가거나, 나가후지랑 놀거나 정도랄까?」

「우아하구만」

「현대판 귀족이니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거지」

하하하 라며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시마마쨩은 학교 어때?」

굴곡이 심해서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음... 나쁘진 않아 아직 까지는」

「좋아 좋아」

히노는 딱히 고민하지 않고 말을 전진시켰다. 나도 룰은 알고 있지만 공부를 한건 아니라서 정석은 잘 모른다. 그래서 적당히 하고 있다.

「아다치치는?」

「아다치는 음... 잘 지내」

「그거 참 다행이구먼」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는걸까?」

「시마무라한테 물어보는게 빠르잖아?」

장기판 위를 서로 바라보며 히노가 당연한 듯 말한다.

「그렇긴하지...」

히노에게 아다치 이야기를 했던 적은 거의 없지만 분위기로 알아채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나와 히노의 적당한 관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