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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와 시마무라/특전소설

[아다치와시마무라] BD특전소설 1권 「Chito」- ②

며칠 후, 회사에서 돌아와 연락받은 대로 아다치가 늦는 것을 알고있다.

「덜컹 덜컹」

혹시나하는 생각에 문고리를 확인해 봤지만 정답이었다. 열쇠로 열고 발로 문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갔으니 그대로 신발도 벗지 않고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아...그래도 안 돼」

일단 누우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고 정리한다.

몸을 굽힌 순간, 남아있던 에너지가 확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드러누우면 죽겠지만, 앉으면 되겠지라며 타협하여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발도 뻗고, 뒤에 손을 짚었다.

「하아...」

연료가 다 떨어져서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몇 번이나 멈췄다.

「피곤해..」

다른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솔직하게 내뱉었다.

나이를 먹어감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이 세상, 그래도 요즘은 잘 해내고 있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집안일이라던가 장보기 귀찮아.

엄마는 적당히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걸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의 이 시간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닌, 「내일도 일이냐」 라며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사실은 피곤해에에에 라며 바닥에 새우처럼 팔딱거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애초에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었다면, 옷부터 갈아입고 저녁이나 만들라이거야.

「해야 하긴 하는데...」

바닥을 밀며 일어난다. 생각 외로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젊다고 확신했다.

아다치와 이 맨션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지 2년인가 3년.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고, 서둘러 갈 것 없이, 천천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중에 질릴 일도 없어 보이고, 너무 빠르게 결과를 찾아낼 일도 없이, 딱 적당한 상태이다.

일어선 다음, 주변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불빛이 없는 지금 상태와 방 안쪽에서 찾아오는 조용함이 사실 싫지 않다.

먼 쪽의 벽을 바라보며 숨 쉬는 것을 의식하자, 쌓여있던 피로가 조금은 빠져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빠져나오는 때의 온도 차에 몸이 살짝 떨려온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언젠가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려나.

계속 잃기만 한다면 나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거라고 생각한다.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고 나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도대체 이 셔츠는 몇 년이나 입었을까? 소매나 목 주변이 헐렁거리고 겨드랑이 쪽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구멍이 나 있다. 이런 것이 좋다.

출근 전에 닫아둔 커튼을 열면, 석양이 비치는 마을을 볼 수 있다. 길거리가 하늘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창틀에 손을 대고 잠시 동안 경치를 바라본다.

하늘 아래를 걸어 다닐 때는 별로 신경 써본 적이 없었고, 내가 얼마나 아래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창문을 열었더니 방충망 너머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아쉽지만 새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까마귀는 아니었다.

여동생은 동물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알지도 모르겠다.

집에 잔뜩 있던 도감이 문득 생각났다. 내 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 그럼」

거실에서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마시고, 뭘 만들까~라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식사 당번은 하루씩 번갈아 가며 하지만 한쪽이 바쁜 시기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번 주는 내가 계속하고 있다.

아다치의 일이 바쁘다는 것은 뭐 그러려니 한다.

「돈은 중대 사항이지~」라며

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들여다본다. 쉬는 날에 사놓았던 식재료를 바라보며 뭘 만들까 생각한다.

아다치는 식사라는 것에 대체적으로 흥미가 없기 때문에, 식단을 짜는데 꽤나 힘들었다.

기왕 만드는 김에 즐겁게 먹어주면 좋겠지만 아다치는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일 뿐이고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물어보면 어떤 요리든 맛있다고 대답한다... 내 파트너는 이런 사람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뭐 먹고 싶은 것을 묻는 건 물어봐도 소용없는 짓이다.

아무거나 상관없다고만 말하니까. 물어보면 일단 생각은 하지만 결과는 같기 때문에, 이런 대화는 애초부터 생략하는 편이 효율이 좋다.

아다치엄마의 기분이 지금에서야 살짝 공감된다.

그럼 그런 아다치는 어떤 것에 흥미가 있냐 하면...

「...부끄럽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대답이 있다.

「우동은 어떠실는지요?」

「으악」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녀석 때문에 놀란다.

하-이 라고 하며, 그 녀석은 기운 넘치게 짧은 팔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소가 그려진 잠옷에 후드에는 부드러운 뿔이 달려있었다.

뿔이 달린 소는 실제로 본 적이 없네 라는 생각을 했다.

야시로였다. 우리 집에 얹혀사는 의문의 생물은 신출귀몰하게 저녁밥을 노리고 나타난다.

「있었구나?」

「실례합니다~」

「문 잠가두었을 텐데」

「하하하하하」

가볍게 웃더니 자리를 피한다. 바닥에서 솟아났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고민하는 시마무라씨에게 조언을 합니다.」

「거 참 고맙네」

「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거나 괜찮은데 말이죠」

이 녀석이 말하는 아무거나 괜찮다는 의미는 아다치가 말하는 것과는 살짝 다르다.

딱딱거리며 옅은 하늘색의 이가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나를 올려다보는 키가 고등학생 때보다 더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왜 우동인건데?」

「낮에 TV에서 봤어요」

「단순하구먼」

우리 엄마한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걸까 뿔을 잡고 만족할 만큼 흔드니 「아으아으아으」 거리자 놓아주었다.

냉장고에 있던 우동팩을 세어보니, 아 역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우동을 먹으려면 네 몫이 부족해」

「그건 큰 문제군요」

야시로가 까치발을 들며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다. 위에서 아래까지 샅샅이 확인하더니 맨 위에 있던 초콜릿을 발견하고는 껑충 뛰어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을 거침없이 내쳤다. 야시로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왔다.

「실력이 늘었군요. 시마무라씨」

「후후후」

의기양양해졌다. 그보다 지금 야시로가 내 키보다 높이 뛰어오른 것에 대해 신경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못 본 거로 하기로 했다. 야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누르며 함께 냉장고 앞에서 고민한다.

「너 점심에는 뭐 먹었어?」

「복숭아를 먹었어요」

그다지 참고할 것이 되지 못했다. 어제 해둔 밥을 넣은 덮밥을 꺼내며 서로 바라보더니,

「볶음밥이라도 할까」

우리 엄마도 뭘 할지 고민될 때는 볶음밥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재료를 많이 넣으면 밥이 적은 것도 커버할 수 있겠지.

「우와~」라고 야시로가 그저 좋아한다. 아마 뭘 만들었어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다음엔 미소시루... 양은 충분히 있고, 그다음엔 어디 보자...」

「젓가락 세팅해둘게요」

선반에서 꺼낸 젓가락을 잡고 탓 탓 탓하며 달려간다. 성급하구먼 이라고 느끼면서도 의외였다.

「이젠 도와주는 거야? 기특하네」

「작은 시마무라씨가 자주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말이죠」

킄킄킄하며 득의양양하게 젓가락을 놓았다. 보고 있자니 힘이 빠지고 웃음이 나왔다.

「여동생은 어때?」

「어떻냐뇨?」

「그게 말이지...」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한순간 고민했다.

「과자를 많이 주니?」

「잔뜩 준답니다」

그거참 다행이네 라며 다시 웃었다. 그리고서 이 녀석한테 빨리는 여동생의 용돈이 살짝 걱정됐다.

「아, 숟가락도 갖다 줘」

「네네~」

여기저기 다니며 야시로가 총총걸음으로 뛰어다닌다. 식탁 위에 놓아두니 금방 돌아왔다.

그렇게 다가오는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그리고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뭐」

「작은 시마무라씨는 뭔가를 도와주면 칭찬을 해줬답니다」

「헤에」

「두근두근」

굳이 말을 꺼내는 단순무식한 녀석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호호」

만족했나 보다.

「...음...」

왠지 내가 뻘쭘해져서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오드득 오드득」

「깨물어서 먹지마」

금방 없어지게 될 텐데.

할 일이 사라진 야시로가 부엌을 어슬렁거린다.

「방해되잖아」

「그런가요?」

「TV라도 보던가」

등을 떠밀며 부엌에서 쫓아냈다. 야시로는 양손을 치켜들고 와~하며 소파 쪽으로 갔다.

그대로 뛰어들어 뒹굴뒹굴하며 TV를 켰다. 채널을 돌려가더니 음식이 나오는 영상을 본 순간 멈췄다.

자기가 항상 하던 대로라면 지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도 원하는 정보를 찾아냈을 테지만...

「아다치씨는 늦나요?」

「살짝 늦는대. 아다치는 성실하니까」

나도 뭐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다치는 고등학생 때부터 알바같은 걸 했었으니까,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다치쪽이 급여는 더 많이 받고 있고, 집안일까지 나눠서 하고 있자니 뭔가 부려먹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살기로 정하고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 살 지라던가, 맞벌이를 할 지라던가. 냉장고의 크기를 정하는 것도 고민했고, 테이블 모양, 소파 색마저도 아다치와 상담했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다치는 시마무라가 좋아하는 거로라고밖에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다치는 자기가 가는 길이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선택해버려도 전혀 상관없나보다.

그게 뭐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보고 싶어 하던 방송이 금방 끝나버리고, 야시로는 그대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여동생도 말했었지만, 말 그대로 사람의 형태를 한 고양이다. 틈만 나면 잔다. 뭐 나도 옛날에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맘 편하게 잘 수는 없다. 쉬는 날을 빼면.

「얼마 전에, 아다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더니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 자게 두더라. 어이가 없었어」

「불성실하시네요. 시마무라씨」

「그렇게 볼따구를 찌그러트린 네가 할 말이냐」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잠자면서 대화하지 마.

양파껍질을 까고 다지고 볶는다. 아다치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손질만 해두었다.

우리 집에서 하는 볶음밥에는 항상 다진 양파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넣었다.

혈통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있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어떤 사소한 인간관계에도 있다.

「좋은 냄새네요」

「그러게」

「쿨쿨」

「잘 거면 자고 말할 거면 말하고 하나만 해」

뇌가 절반 정도는 절전모드로 돌려놓고 나머지만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 새도 있다고 들었다.

새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생물이 한다고 신기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뒷정리를 마치고, 뒹굴거리며 자고 있는 야시로에게 담요를 덮어준 다음 소파 끝자락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밖에는 노을빛이 남아있었다. 가만히 입을 벌린 채 기울어진 거리의 풍경을 즐긴다.

살짝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별 볼 일 없던 동네가 확 달라 보인다.

시각이라는 건... 뭐랄까... 즐길 수 있는 것인가보다.

「카레 같은 색이네요」

눈을 감은 채로 야시로가 말한다. 어디서 뭘 보고 있는 건지.

「카레라...」

저 녀석은 식탐이 대단한 만큼 딱 알맞은 비유였다. 하지만 카레 같은 색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옅은 것 같았다.

이런 건 말이지.

「꿀 같은 색이라고 해야지」

어째서 꿀이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물엿 같은 색이어서 그랬을까?

「흠흠흠」

「그래그래」

「꿀도 맛있어 보이네요」

「그런 생각밖에 안 드는 거냐...」

에잇! 하고 작은 발바닥을 찔렀다. 말랑말랑했다.

「새근쿨쿨」

잠자는 소리가 조잡해졌다. 엄청 성의 없는 생물이었다.

아니면 적당히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가 저물어가면서 나도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럴 때 옛날의 나는 무엇을 했는지를 되돌아보고 나도 자야지라며 소파에 다리를 올렸다. 그러다 이래저래 바쁘게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을 자면서 기다리는 듯한 그림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저항감이 살짝 들었다.

역시 돌아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리는 편이 좋겠지? 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늘어진 모습은 안 돼. 앉아있으면 확실하게 잠들어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체조를 시작했다.

라디오 체조를 떠올리며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볍게 점프를 해봤다. 계속하다 보니 어느샌가 야시로가 일어나서 옆에서 같이 체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눈은 감겨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어? 이거 알아?」

「작은 시마무라씨와 자주 했었답니다」

「아...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름방학 때 라디오 체조를 하던 곳에서부터 여동생이 이 녀석을 데리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데려올 필요도 없이 대부분 집에 있다.

흔들흔들 춤을 추듯 움직이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물이 마음에 스며들어 기분 좋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