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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와 시마무라/SS

아다치와시마무라) SS-타루미 이야기

아다치와시마무라 5권 이후 내용입니다. 

 

 

 

 

 

 

 

『빛나는 것처럼 보여』

8일 전 불꽃축제에서 시마쨩에게 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되새긴다.
그날 본 경치는 이미 희미하게만 기억되는데도 그 목소리만큼은 유난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빛나는 것처럼 보여... 불꽃놀이보다  반짝반짝.

히죽히죽 웃는 내 얼굴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스마트폰 화면에 반사된다.
그것을 보고, 정말 이상한 이야기지만, 옛날의 시마쨩이 생각났다.
어릴 적 시마쨩은 자주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눈꼬리까지 녹아내리는 듯한, 막힘없는 순수한 미소.

지금은 아마 이렇게 웃어주지 않겠지만...

고등학생이 된 내가 이런 얼굴을 하는 것도 어떨까 싶다. 아무래도 나는 시마쨩이 얽히면 온몸이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정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떠올리며 멍하니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나의 과거는 가느다란 실로 간신히 연결된 것과 같았다.
너무 가늘어서 만져도 거의 감촉이 없는 실. 그래도 천천히 조심스레 끌어당기다 보면 드물게, 

정말 아주 드물게 실이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럴 때 시마쨩은 언제나 옛날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준다.
그런 시마쨩을 보면 나는.. 나는... 음...그래  포기할 수 없게 돼.
어딘가에 더 깊은 곳에 옛날 시마쨩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터무니없는 작은 실마리를 기대며, 또 감촉이 없는 실을 열심히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런, 벌써 이런 시간

침대 옆 시계를 보니 1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노을은 여름의 긴 낮잠을 밤에 물들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저녁을 만드는 날이니까 저녁거리를 사러 가야겠다.
가볍게 갈아입을 옷을 끝내고 나서, 가방을 들고 여름 저녁으로 내디뎠다.

끓어오르는 듯한 열기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면서더워...」라고 혼잣말이 나와버린다.
태양은 이미 기울었는데, 그 더위는 밤사이에도 단단히 땅에 박혀 있으니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강가 길을 걷기로 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강물소리와 강 건너편에 있는 금화교.

그곳에서 시마쨩의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 왠지 조금 초조해진다.

그 다리 끝에 있는 육교에서 작은 두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색한 걸음으로 토란토란 손을 이끌려 걷는 키가 작은 쪽 아이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뺨이 느슨해진다. 자매일까.


이렇게 거리를 걷다 보면 그만 행인들을 눈으로 쫓아버린다.
그 둘이서 웃고 있는 아이들은 어디서 손을 잡고 왔을까, 그 벤치에 앉아 있는 커플은 어떤 길을 따라 사귀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군중의 그늘에서 불쑥 시마쨩이 나타나거나 하지 않을까. 

「아니 없을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슈퍼에 가서 적당히 야채를 산 뒤 항상 가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생각하면 시마쨩을 만난 것도 이 정육점이고,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옅은 기대를 안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세요~」
「아 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쇼케이스 건너편에서 동갑내기 정도의 여자애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둘러봐도 손님은 나밖에 없다. 뭐, 그렇게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리 없겠지...하고 생각하면서, 쇼케이스 안쪽의 여자애쪽으로 돌아선다.
그녀를 전에도 본 것 같다. 분명히 시마쨩 하고도 친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경 속의 졸린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건 그렇고, 크다고 생각한다.
뭐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도 저 정도 있으면, 시마짱이 조금 더 신경 써 주거나 할까.
아니, 크기랑 관계가 있나? 연구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헤이헤이 나는 파는물건이 아닙니다요」
「에.... 아  미안」

몰래 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꽤 멍하니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뭐하는거야 나...
부끄러워 눈을 돌리며 진열장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고보니, 시마쨩... 아니, 시마무라, 씨? 와는 친구야?

시마쨩을 어떻게 불러서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조금 어색해졌지만 물어봤다.
여자는 턱 끝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약간 고민한 기색을 보인 뒤 아, 시마무라하면서 손바닥을 툭 친다.

「응 동급생 절친이지!」
「그렇구나......」

 

정말 사실일까...


이지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야기해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가게 보는거 때문에 피곤한 것인지, 목소리에 그다지 억양이 없는 것도 기인하고 있는거같다.

같은 학교야?
그렇고 말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왠지 잘난 척 코끝을 위로 향한다.
이상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시마쨩이랑 같은 학교라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질지도 몰라.
어쨌든 그녀가 동창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시마쨩의 모습을 물어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시마쨩.... 시마무라씨는 어떤느낌이야.....?」
「으음. 어떤 느낌일까...

그녀가 다시 턱을 가리키며 비스듬히 눈을 헤엄쳐 생각하는 내색을 보인다.

눈꺼풀이 졸린 듯 움직여서 정말 생각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멍하니 있어」
「헤에.....」

잠시 후 별로 참고가 되지 않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의 시마쨩은 확실히 계속 멍해져 있다.
학교에서도 아무래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아쉬운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씩씩하고 발랄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슬퍼진다.

「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에?」

그녀가 내 뒷문 쪽을 바라보다가 살짝 볼을 붉혔다.
딸랑딸랑 미닫이문이 레일을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서옵쇼~」

「요~ 수고~.... 앗 어라 타루쨩이잖아」
「시, 시마쨩」

설마 정말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조금만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시마쨩의 나른한 눈망울과 한순간 시선이 겹친다.

탁, 실타래 같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우.. 우연이네...! 시마쨩도 심부름 중?」
「아~ 응」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 가볍게 주고받으며 시마쨩은 진열장의 내용물을 손가락으로 쫓아 고로케 8개를 주문했다.

가족 4인분의 오늘 저녁 반찬인가?
그러고보니 나도 이야기만 하고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다진 고기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여자애는 고로케 8개, 다진 고기 8....300g..... 그리고 또 뭐였더라그러면서 어색한 손놀림으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괜찮을까.

각각의 준비가 될 때까지 쇼케이스 앞에서 아직 두 사람은 서 있다. 석양이 비치고, 등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조심조심 옆을 살핀다.
저녁노을에 비추는 시마쨩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아아.
시마짱이구나 하고 잘 모르는 감동을 느끼면서도 그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데, 왠지 뭔가 고민하고 있다고 할까, 일단 기운이 없어 보였다.

「시마쨩 무슨 일 있었어?」
「에?」
아니, 왠지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정작 시마쨩은 그래? 그렇진 않은거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뭔가를 숨기거나 속이는 기색이 없었고, 정말 기운이 없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본인이 부정하고 있으니까 내가 단정짓는 것은 이상하지만, 시마쨩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을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내가 주문한 다진 고기와 시마쨩이 주문한 고로케가 완성됐기 때문에 둘이서 결제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아까보다 검푸르게 물든 하늘과 풀 속에 숨어 있는 벌레 울음소리가 우리를 반긴다.
늦더위는 아직 계속되지만 계절은 확실히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고 있다.

시마쨩이 오른쪽 옆에 나란히 옛날 함께 걸었던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주변 경치가 높아져 어릴 적 보던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옆에서 걷는 시마쨩에게는 그렇게 보일까...?

「......」
「......」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말없이 걷는다.
예를들면 저번 불꽃놀이 이야기라던가, 나중에 어디론가 놀러가자고 권유한다던가...
그런 얘기 한두 가지를 해도 좋지 않을까싶다. 이양이면 시마쨩쪽에서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힐끗. 하고 시마쨩의 옆모습을 들여다본다.
석양에 비치는 시마쨩의 얼굴은 역시 여느 때와 같은 평탄한 표정 깊숙이 피로랄까 고민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까지 비눗방울처럼 떠 있던 화제를 모두 터뜨리고 입을 열었다.

「시마쨩」
「응?」

시마쨩이 이쪽으로 돌아본다.
졸린 듯한 눈동자가 눈길 하나 마주치지 않은 채 굳어 있었다.

어... 아니..  만약 뭔가 상담할 일이 있으면 말이야 언제든지 말해줘 전화로도 상관없으니까 아.. 직접 만나서도 괜찮고..
「아......응」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다.

「뭐어.. 고민은 있는것보다 없는게 좋지만.... 만약 있다면 말이야. 나는 시마쨩에 대해 옛날부터 잘 알고 있으니까

일방적으로 혼자서 이야기하다가 착지점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고 그대로 어디론가 추락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시마쨩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응 고마워 타루쨩」

시마쨩은 그렇게 말하며 웃어 주었지만, 그 표정과 목소리색은 옅은 채로...
아아,  전해지지 않은거 같아서 답답하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조금씩 커져간다.
내 마음에 흐르는 불쾌한 웅성거림 소리를 조금 닮았다.

그리고 또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나와 시마쨩의 발소리,강소리 그리고 희미한 바람소리만이 잘라낸 듯 머리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마쨩을 손을 잡지 않으면 조금 거리를 두고 걸으며 그대로 시마쨩이 처벅처벅 앞으로 걸어갈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손을 뻗을 수는 없었다.
일단 끊긴 관계는 아주 가늘고 여리니까. 안이하게 만지면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

다리 앞에 다다르려는데, 시마는 무료한지 고로케가 든 봉지를 조금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뭘까 싶어 봤는데 그대로 봉지 속을 들여다보며 「역시나」라고 중얼거렸다.

「좀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고로케가 10개 들어있어
「응?」

「이거 봐봐」라며 봉지 속을 보여줘서 들여다보니 분명히 10개가 들어 있었다.
튀김의 고소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배벌레가 울 것 같다.

「뭐 어때 나가후지의 서비스겠지 자 타루쨩」
「헤?」

시마쨩이 천천히 나에게 고로케를 하나 내밀었다.

이대로 가져가면 동생들이랑 싸울 것 같아서. 지금 먹어 버릴까 봐. 아... 아니면 다이어트 중이었어?
아, 아니, 마침 배가 고팠어! 먹을게, 먹을게, 고마워!

「텐션이 높네....」

설마 시마쨩에게 뭔가를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혼자서 들떠버리고 말았다.
이럴 때 역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버리는 감각이 되는 것은 좋지않은걸까....

침착한 모습의 시마쨩을 보며 나만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워하면서도 받은 고로케 끝을 소중하게 조금씩 먹었다.
깨물자 달콤한 감자향이 코를 찔렀다. 다진 고기보다 감자가 더 많아 왠지 안심이 되는 내 취향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시마쨩의 목소리가 들려 그쪽을 향하자 시마쨩이 자신의 고로케를 오물오물 먹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졸린 눈망울과 시선이 겹친다. 그게 너무 기쁘고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왜 그런거지?

「타루쨩이랑 옛날에 이렇게 걷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이 났어

그렇게 말하며 시마쨩이 그리워하듯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슴이 바짝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하마터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기억나?
어~음 수영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지?
그래그래, 그립구나라고 생각했어

부드럽게 미소짓는 시마쨩의 옆얼굴을 바라보면 먼 옛날 기억이 머릿속에서 톡 쏘며 되살아난다.
아아 확실히 초등학생 여름방학 때 시마쨩과 수영장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에게 고로케를 사달라고 해서

같이 먹으면서 돌아간 것이었다.
방학숙제 그림일기에 그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시마쨩이 기억해 주었다니...

그리고 시마쨩은 아하하 하고 애매하게 웃더니 내쪽으로 돌아섰다.
더 이상 염색하지 않은 그 시절과 같은 검은 머리가 검푸른 하늘로 휘날리며 비친다.

「또 그림일기에 그릴 수 있겠네 타루쨩」

그렇게 말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시마쨩의 얼굴이 너무 어려보인 것 같았다.
옛 앨범 사진을 그대로 붙인 듯한 순수한 미소.
나는 또 가는 실 끝에서 시마쨩의 세피아색 기억을 끌어당겼다.
그런 시마쨩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중얼거린다.

역시 포기할 수 없잖아...

붉게 물드는 뭉게구름, 저 멀리 은빛 달이 떠 있었다.

 

 

 

 

SS출처: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77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