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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 상대가 키스하고 있었다/1권

내 첫사랑 상대가 키스하고 있었다 1권 2장-2

그 녀석보다 늦게 갈아입고 가방 속 내용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눈에 띄는 삐침머리가 없는지 손으로 살피며 거실을 둘러봤다. 거실이라고 할까, 방은 이것밖에 없긴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나가 없었고 푹신푹신한 여자만 이불을 덮고 있었다. 얼굴선이 가늘어 눈을 감은 옆얼굴은 덧없다.

그대로 장례를 시작해 관에 넣어도 아무도 생사를 의심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대로 나가면 이 여자 한 명을 집에 남기는 건데 괜찮을까.

엄마 입장에서는 친구라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모르는 여자다.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갈수 있는 것도 싫고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이쪽이 바쁜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고 있는 것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어른은 일 안하는 건가.

하지만 깨워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늦었어도 물은 한잔 마시고 아파트를 나와 문을 잠근다.

먼저 나간 그녀석을 신경쓰지않아도 될 것 같아서 힘껏 팔을 흔들며 나아갔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자 옆에 작은 여자가 서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작은 머리가 휘청휘청별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뭐야... 이녀석을 무시하고 추월하니까 발자국 소리가 겹친다. 돌아보니 무표정으로 뒤에 서있었다.

「.....................」

따라오지 말라는 내 분위기를 느껴서일까.

「여기서 학교 가는 길을 몰라서 따라가고 있었어」

「아아 그런거냐......」

설명을 듣고 납득은 한다.

「같은 학교라서 살았어」

담담하게 감정의 기복도 없이 그 녀석은 말했다. 살아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줄을 서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같은 길을 걷는다.

뒤쪽에서 계속 시선을 느끼며 걷는 것은 견갑골을 쓰다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제부터 계속 침착함을 잃은 것 같다. 아니 이녀석이 오기 전에는 침착했던가? 하고 문득 거기까지 생각할 뻔했다.

이러면 옆에서 같이 걷는게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옆에 오면 뭐라고 말해야할지 망설여져 이대로 돌아보지 않고  불편하지만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관계성이 아무 형태도 형성되지 않아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 같은 건 구축하는 상대일까 싶기도 했다.

누군가와 등교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고등학교가 되고 나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는 즐거움이나 마음의 탄력은 없었고, 만져지지도 않았는데 팔에 매달리는 듯한 답답함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팔이 무거워 나도 모르게 자세가 기울어질 것 같다.

이 불편함이 집에 가서도 계속될 거라고 상상하니 아직 낮도 밤도 멀었는데 눈앞이 캄캄해진다.

내 방이 아니라 거실에서 생활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해도 엄마가 좁다거나하는 이유를 대면서 거절할게 뻔하다.

사실 그 여자가 있으니까 그 의견도 맞을것이다. 애초에 데려오는거 자체가 문제라는 내 의견이 분명 제일 맞을 것이다.

「큰길까지 나왔으니까 어떻게 가는지 알겠지?」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걸었다.

「아... 응」

그녀석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갑자기 뛰어서 거리를 두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까,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까,

내가 피곤할 뿐이라고 할까.결국 이대로 학교까지 가게 될 것 같다.

계속 어색하게 등에 울퉁불퉁한 막대기를 굴리는 듯한 공기 속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키 큰 주택에 아침 햇살을 가린 어둑어둑한 길을 빠져 큰길로 나온다.

길 건너편에는 내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아파트가 보인다.

딱 보기만 해도 창문 수와 층수가 차이가 난다. 4층 건물에 옥상까지 방이 있다.

이런 아파트에 산다면 동거인이 늘어도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우리 집에 온 걸까...?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용히 말을 걸었다.

「갑자기 와서 방해지」

돌아본다. 그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그 눈동자의 어두운 빛에 내 쪽에서 눈을 피할 것만 같았다.

그런걸 과연 기특하게도 제대로 고려했을까, 하고 너무 당당해서 놀랐다.

「방해」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말한 직후 마음속에 안개가 낀다.

「아니 방해랄까...... 아직 머리가 안 따라 간달까 아직 모르겠어」

엉뚱한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저 녀석은 점점 머리가 맑아져서 꿈을 자각한 근처에서 일어나기 일쑤인데,

나는 좀처럼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아마 평생 무리일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어차피 한달 정도 일테니까」

「한달?」

「남의 집에 굴러 들어갔다가 대게 한달 만에 쫒겨나 제일 길었을떄가 두달 그 반대는 일주일」

「......아 그래」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학교 국어 교사에게는 배우지 않았다.

익숙한 걸까, 그런 삶에...

그러면서도 학교에는 다닌다니.....그런 녀석도 있구나.

결국 끝까지 옆에 서지 않고 둘이서 학교까지 걸었다.

눈을 멀찌감치 뜨면서 걷다 보면 그 시선의 감촉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녀석은 내가 목표로 하는 교실보다 앞 교실로 들어간다. 역시 반은 달랐던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같은 반이 였다면 기억 했을지도 모다고 생각한다. 근데 같은 학년이구나.

연하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몸집이 작은 것 뿐인 것 같다.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그렇지만 등교는 같이하고 돌아갈 곳은 똑같다.

동거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존재를 인정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공 모양의 문제를 계속 껴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교실 자리에 앉아도 싫은 땀처럼 계속 따라다닌다.

그런데도 주위는 나와 상관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그 흐름에서 떨어지지 않게 따라가야 한다.

턱을 괴고 도망치고 싶기도 한 문제를 어떻게 든 마주한다.

나와 그 녀석

그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고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일단 정리를 해보자.

그 녀석은 나에게 해방꾼일 뿐이라고 천천히 납득했다.

방과 후 가방을 두 손으로 끼듯 움켜쥔 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한다.

「뭔가 굳어있어」

친구에게 견갑골 언저리를 쿡쿡 찔리다. 삐걱삐걱 고개를 어색하게 움직여 로봇 흉내로 오해 받으면서도 더욱 고민한다.

평소라면 친구와 어디 들렸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은 그런 흐름을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쨌든…… 일단 먼저 집에 가자. 

사람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다니 끔찍하다.

처음으로 이상한 일본어라고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에게 적당히 인사하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간다.

지나가는 김에 다른 교실을 곁눈질로 들여다봤지만 그 녀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딴 데로 새지 않고 아파트로 돌아간다.

육교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들은 아직 낮이 끝에 걸려 저녁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날이 꽤 길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 6월이 끝나고 7월을 맞이하면 내 방에서의 지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여름과 함께 매년 찾아오는 더위에 더해 올해는 작은 이물질이 하나 생겨 한숨밖에 안 나온다.

입주할 수 있는 방은 4개의 작은 아파트.

옆 주택과 크기는 엄청 차이나고 우편함의 수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일반 민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인접한 덩쿨식물투성이인 집이 아파트가 쬐어야 할 햇빛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 무리하게 파고든 듯한 형태로 존재하는 아파트 계단은 내려오는 사람과 스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자동 잠금이라든지 관리라든지 그런 고급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원래는 흰색인데 얼룩이 섞여 회색으로 변해가는 계단을 올라가 집 앞에서 열쇠를 꺼낸다.

평소에는 눈의 초점이 맞지 않을 정도로 주의 산만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오늘은 현관 신발을 주시하며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왼쪽에서 확인해보니 모르는 신발이 한 켤레 정리되어 있었다. 크기로 보아하니 아마 딸 쪽일것이다.

어떻게 들어 온 걸까? 열쇠는 엄마와 나밖에 없는데.

그 녀석의 신발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위치에 내 신발을 벗고 아주 짧은 복도와 싱크대 앞을 지나간다.

경계하며 거실에 들어서니 새벽에 자던 푹신푹신한 여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불은 개어져 있고 방을 더럽힌 흔적도 없다. 귀신이 사라진 것 같아서 슬쩍 커튼 끝을 보았다.

다 꿈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낙천적이지는 않은데 왠지 진짜 꿈을 꾸는 것 같다.

걷고 싶지도 않은데 마음이 계속 걷고 있는 느낌은 도대체 며칠이 지나야 익숙해지는 걸까.

방 한가운데서 귀를 기울여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기척도 없지만, 조금 조심스러워하면서 자기 방의 문을 연다.

작은 여자가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젯밤에 본 경치와 같았다. 등을 구부리고 교과서를 바닥에 놓고 있다.

실내복 같은 낡은 셔츠는 옷깃이 헐렁하고 앞으로 구부리면 가슴팍이 무방비로 보일 것 같아 왠지 눈을 돌려 버린다.

그 녀석이 나를 알아보고 고개를 든다. 조금 앳때 보이지만 단정하고 이쁜 얼굴이다.

움직임에 맞춰 긴 머리가 물러나고 그 반듯한 얼굴이 보이니 흐린 날 구름 틈에서 보이는 해를 보는 듯했다.